영국은 홍콩을 세 번에 걸쳐 가져갔습니다. 그중 1898년에 빌린 신계(新界)만 기한이 99년이었고, 그 99년이 1997년에 끝났습니다. 그래서 1997년 7월 1일에 홍콩이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기한 없는 할양이었는데 왜 셋 다 돌려줬을까요. 학교 시험이나 뉴스에서 이름만 들어 본 분을 위해 썼습니다.
| 구분 | 핵심 내용 |
|---|---|
| 반환일 | 1997년 7월 1일 |
| 홍콩섬 | 1843년 난징조약, 영구 할양 |
| 구룡반도 | 1860년 베이징 조약, 영구 할양 |
| 신계 | 1898년, 99년 조차 |
| 반환 협정 | 1984년 12월 19일 서명 |
| 반환 후 지위 | 중국 특별행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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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한 번에 영국 땅이 되지 않았어요
1843년, 1860년, 1898년에 각각 다른 조약으로 다른 땅을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세 번입니다.
1843년 난징조약: 홍콩섬
1842년 8월 29일에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하고, 1843년 6월 26일에 발효했습니다. 이때 넘어간 건 홍콩섬(香港島) 하나입니다.
1860년 베이징 조약: 구룡반도
제2차 아편전쟁이 끝난 1860년 10월 24일, 베이징 조약(北京條約)으로 구룡반도(九龍半島)가 넘어갔습니다. 홍콩섬 바로 북쪽에 붙은 뭍이 구룡반도입니다.
1898년 조약: 신계
1898년 6월 9일 홍콩 영토 확장 조약으로 신계와 인근 섬 235개를 99년간 조차(租借)했습니다. 조차는 땅을 빌리는 것이라 기한이 끝나면 돌려줘야 합니다.
왜 신계만 99년이었을까요?

앞의 두 번은 전쟁에 이기고 땅을 떼어 받은 할양이고, 1898년은 빌린 땅입니다. 할양에는 기한이 없지만 조차에는 끝나는 날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 영국 협상가들은 99년을 ‘영원과 같은 기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 수명보다 길어서 사실상 영구 지배라고 영국은 봤습니다.
그런데 1997년이 왔습니다.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신계보다 훨씬 작은 조각입니다. 마실 물도 먹을 것도 다 신계에서 나왔습니다. 공항과 배후지까지 거기 있었으니까요.
💡 신계를 빼고 홍콩섬만 붙들고 있으면 물과 땅이 끊긴 섬 하나가 남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세 지역을 한 묶음으로 넘기는 쪽을 택했습니다.
1984년 협정에서 1997년 반환식까지

반환 날짜가 정해진 해는 1997년이 아니라 1984년이었습니다. 1984년 12월 19일 홍콩 반환 협정을 정식 서명하면서 약속한 반환 시점은 1997년 7월 1일.
반환식 날짜입니다. 1997년 6월 30일이었습니다. 날짜가 바뀌는 7월 1일, 홍콩은 중국 특별행정구(特別行政區)로 출범했습니다.
⚠️ 1997년 반환의 법적 방아쇠는 신계 조차 만료입니다. 아편전쟁은 그 조차를 불러온 배경입니다. 둘을 바꿔 쓰면 틀립니다.
정리
영국은 세 번에 걸쳐 홍콩을 가져갔는데, 기한이 붙은 것은 1898년 신계 조차의 99년뿐이었습니다. 1997년에 그 기한이 끝나자 나머지 두 지역까지 함께 넘어갔습니다.
연도 세 개만 외우세요. 1843년 홍콩섬, 1860년 구룡반도, 1898년 신계입니다. 그래서 홍콩 전체가 넘어갔습니다.
참고한 곳: 난징 조약·베이징 조약·홍콩 반환 협정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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