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는 1534년 6월 23일에 태어나 1582년 혼노지에서 죽은 센고쿠 시대 무장입니다. 일본 통일의 기초를 깔았지만, 통일 자체는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이름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 앞에 있던 사람이 뭘 했는지는 흐릿합니다. 그 빈자리를 채워 보겠습니다. 일본역사 오다 노부나가 어떤 인물인지 48년 연표로 먼저 보고, 흔히 잘못 아는 세 가지를 짚습니다.
| 구분 | 핵심 내용 |
|---|---|
| 생몰 | 1534년 6월 23일~1582년 6월 2일 |
| 출신 | 오와리국 다이묘 |
| 최대 전과 |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 |
| 군사 혁신 | 1549년 조총 500정 주문 |
| 죽음 | 혼노지의 변,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 |
| 후계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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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년부터 1582년까지, 48년 연표
| 연도 | 사건 |
|---|---|
| 1534.6.23 | 오와리 출생 |
| 1549 | 조총 500정 주문 |
| 1560 | 오케하자마 전투 |
| 1562 | 기요수 동맹 |
| 1568 | 요시아키 옹립 |
| 1573 | 무로마치 막부 멸망 |
| 1575.5.21 | 나가시노 전투 |
| 1576 | 안토성 착공 |
| 1582.6.2 | 혼노지의 변 |

이름을 얻은 자리는 1560년 오케하자마입니다. 병력 3천으로 2만5천에서 4만에 이르는 이마가와 요시모토 군을 깼습니다.
1562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기요수 동맹(清洲同盟)을 맺어 동쪽을 묶어 둡니다. 등 뒤가 조용해졌습니다. 그는 서쪽으로 길을 냈습니다.
1568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쇼군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1573년에 직접 내쫓습니다. 그는 자기가 세운 쇼군을 자기가 내쫓았습니다. 그렇게 무로마치 막부가 끝났습니다.
조총 500정은 무엇을 바꿨나?

1549년, 그는 조총 500정을 한 번에 주문합니다. 총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때에 500정을 한꺼번에 사들였습니다. 한두 자루를 신기해하던 때가 아닙니다.
결과가 나온 날이 1575년 5월 21일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입니다. 3천 명의 조총부대가 당시 최강으로 꼽히던 다케다 기마부대를 무너뜨렸습니다. 마방책(馬防柵, 말을 막는 나무 울타리)을 세워 기마의 속도를 죽이고, 그 뒤에서 총을 쏘는 방식이었습니다.
💡 노부나가는 총을 많이 샀습니다. 총을 어떻게 세워 쏘게 할지까지 설계했습니다.
흔히 아는 노부나가, 실제 노부나가
| 흔히 아는 것 | 실제 |
|---|---|
| 약소국 출신 | 오와리는 생산력 우수 |
| 유별난 잔인함 | 당시 다이묘 평균 수준 |
| 십대 때 멍청이 | 의도된 파격 |

사람들은 그가 약소국에서 어렵게 올라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와리국은 면적에 비해 생산력이 좋았고 수도권인 킨키 지방과도 가까웠습니다. 출발선에 선 그에게는 물려받은 총과 성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십대 때의 기행을 보고 그를 ‘멍청이’라 불렀습니다. 그가 파격적인 행동과 복장을 일부러 연구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눌러 두려고 그랬다는 겁니다.
그는 48년을 살았습니다. 전쟁하는 방식을 바꾸고 권력이 움직이는 틀도 바꿨지만, 통일은 남의 손에 넘겼습니다. 통일을 마친 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습니다. 조총과 성, 동맹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은 덕이었습니다. 뒤를 이은 사람이 궁금하면 일본역사 도요토미 히데요시 어떤 인물을 이어 읽으세요.
참고한 곳: 위키백과, 나무위키,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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