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성씨가 10만 개인 이유, 묘자와 메이지 유신

일본 이름 성씨 많은 이유, 일본역사로 보면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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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씨가 몇 개인지 물으면 답이 하나로 안 나옵니다. 10만 개설, 12만 개설, 13만~30만 개설이 모두 돌아다닙니다. 한국은 300여 개인데 일본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 갈림길이 1868년 메이지 유신에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
구분 핵심 내용
성씨 개수 10만·12만·13만~30만 설이 갈림
한국 성씨 300여 개
기준 사건 1868년 메이지 유신
옛 이름 묘자(苗字)
에도시대 개수 1만~3만 개, 학자마다 다름
창씨개명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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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개일까, 30만 개일까

정확한 개수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씨 연구가 니와 모토지의 『일본성씨대사전』에는 30~40만 개로 나옵니다. 다만 이 숫자는 한자와 히라가나를 따로 세고 요미가나(읽는 법)까지 따로 센 결과라는 반론이 있습니다.

같은 성을 한자로 한 번, 읽는 법으로 또 한 번 세면 숫자가 몇 배로 불어납니다. 그래서 30만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셌는지 보지 않고 가져다 쓰면 오해를 삽니다.

옛날에는 아무나 성을 못 썼어요

메이지 유신이 일본 성씨를, 이렇게 늘렸다 절차 안내: 에도시대: 지배층 중심으로 성 사용, 1868년 메이지 유신: 근대 국가 체제로 전환, 국민 전체에게 성 정하기를 강요, 지역 지명을 바탕으로 성 정함

일본에서는 성을 묘자(苗字)라고 부릅니다. 한국 성씨가 본관과 혈통을 따라간다면, 묘자는 지명이나 지형에서 온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다나카(田中)는 논 가운데, 야마모토(山本)는 산 아래라는 뜻입니다.

에도시대에 묘자를 쓰던 사람은 일부였습니다. 남은 기록이 죄다 지배층 것뿐입니다. 세는 기준부터 흔들립니다.

⚠️ 에도시대 성씨 개수를 하나의 숫자로 단정하는 글은 걸러 읽으세요. 학계도 아직 답을 내지 못한 대목입니다.

메이지 유신 뒤에 무슨 일이 있었나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근대 국가 체제로 넘어갑니다. 호적으로 국민을 관리하려면요, 모두가 이름표를 달아야 했습니다.

성을 쓴 적 없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성을 정했습니다. 물려받은 이름이 없으니 가장 가까운 것을 골랐습니다. 자기 집 앞 논, 뒤편 산, 마을 이름입니다.

살던 동네 이름을 그대로 붙였으니 같은 성이 지역마다 쏟아졌습니다. 대신 한자 조합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종류가 수만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한국은 왜 적고 일본은 왜 많을까

한국과 일본의 성씨, 정하는 방식이 달랐다 비교표: 한국 성씨 개수 300여 개, 일본 성씨 개수 10만~30만 개, 한국의 특징 소수 성씨에 집중 (김·이·박), 일본의 특징 지역별로 산재

한국은 성을 정한 시기가 훨씬 앞섰고, 여기서 길이 갈립니다. 한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기존 성씨를 나눠 가지는 쪽으로 갔습니다. 김·이·박에 사람이 몰린 이유입니다. 일본은 1868년 이후 짧은 기간에 각자 새로 만들었으니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9년 창씨개명은 결이 또 다릅니다. 식민지 조선인에게 일본식 씨(氏)를 만들게 한 정책입니다. 메이지기의 성씨 정비와 같은 사건으로 묶으면 안 됩니다.

이름을 다시 볼 때

일본 성씨를 검색하다 숫자가 엇갈려 헷갈렸다면, 그 자료가 한자만 셌는지 읽는 법까지 셌는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그것만 알면 대부분의 혼선을 걷어냅니다.

참고한 곳: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데이팁 dayti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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