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조총을 처음 받은 건 1589년 7월입니다. 대마도 도주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선조에게 진상했어요. 그런데 이 총은 군기시(무기 창고)에 보관만 하고 끝났습니다. 임진왜란이 터진 1592년까지 복제도, 부대 편성도 없었어요.
임진왜란에서 조총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총이 어디서 왔고 조선은 왜 안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서 찾아온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 구분 | 핵심 내용 |
|---|---|
| 일본 전래 | 1543년 다네가시마, 포르투갈 |
| 일본 생산량 | 10년 만에 3000정 이상 |
| 조선 진상 | 1589년 7월, 소 요시토시 |
| 조선 대응 | 군기시 보관으로 끝 |
| 조선 제조 | 1593년 5월 12일 정철총통 |
| 전쟁 종료 | 15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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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다네가시마, 일본에 들어온 경로

일본에 조총이 들어온 건 1543년, 다네가시마 섬입니다. 포르투갈을 거쳐 전해졌고, 그래서 종자도총(種子島銃)이라는 별칭이 붙었어요.
10년 만에 3000정 이상을 만들어냅니다. 들여온 무기를 베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찍어내는 공방까지 그만큼 빨리 갖췄습니다.
⚠️ 전래 과정에 관여한 포르투갈인 대장장이는 이름도, 정확한 기여도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기를 자세히 풀어놓은 이야기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조선은 왜 창고에 넣어뒀나?

기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조선의 주력은 화포였어요. 천자총통(天字銃筒)은 1555년에 만들어진 대형 화포로 사거리가 900보입니다. 천·지·현·황 네 등급 중에서 제일 큽니다. 해전에서 중심이 된 무기였죠.
세종 때 만든 신기전(神機箭)도 한 번에 여러 발을 멀리 날렸습니다. 화살에 화약 튜브를 달아 연소 가스로 날리는 로켓 무기예요. 조선은 손에 드는 총 대신 크게 쏘는 화포로 화약 기술을 쌓아갔습니다.
말 타고 활 쏘는 병사를 앞세워 싸웠습니다. 들판에서 붙으면 이들이 승패를 갈랐죠. 한 발 쏘고 화약과 탄환을 다시 채워야 하는 총은, 활에 익숙한 군대 눈에 느린 무기로 보였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 500정을 줄 세워 번갈아 쏘게 했어요. 총 한 자루가 얼마나 좋은지보다, 여러 명이 줄을 나눠 번갈아 쏘는 집단 운용이 전투를 갈랐습니다. 한 줄이 재장전하는 동안 다른 줄이 쏘면 끊기지 않습니다.
1593년 5월 12일, 정철총통

조선은 1593년 5월 12일에 조총형 화포인 정철총통(鉄銳總筒)을 완성합니다. 이순신 휘하 군관 정사준(1553~?)이 개발을 맡았고, 난중일기에 그날 기록이 남아 있어요. 순천 출신 군관이 전쟁 1년차에 만들어냈습니다.
전쟁이 1598년까지 이어졌으니, 조선군은 전쟁 중반부터 조총을 직접 만들어 썼습니다. 1589년 진상에서 1593년 제조까지 약 4년, 전쟁이 터지고 1년이 걸렸어요.
흔히 아는 것과 실제가 어긋나는 데가 있습니다.
- 조선이 조총을 즉시 받아들였다? 아닙니다. 1589년 진상 후 보관만 했고, 전쟁을 겪고서야 가치를 알았습니다.
- 기술이 없어서 늦었다는 설명도 맞지 않습니다. 이미 쓰던 화포가 워낙 셌으니 굳이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 일본군 조총이 조선군을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도 한쪽만 봤습니다. 해전에서는 거북선의 천자총통·지자총통이 우세했어요.
참고한 곳: 우리역사넷,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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