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다 아는데 뭘 한 사람인지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진시황은 기원전 246년 열세 살에 즉위해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황제입니다. 그 사이가 딱 25년이었습니다.
중국역사 진시황 어떤 인물인지 검색해 보면 보통 통일과 분서갱유, 병마용 정도만 기억에 남습니다. 연표를 먼저 놓고, 흔히 잘못 전해지는 이야기 네 가지를 기록과 맞춰 봅니다.
| 구분 | 핵심 내용 |
|---|---|
| 본명 | 영정(嬴政), 성은 영·이름은 정 |
| 출생 | 기원전 259년 1월 |
| 즉위 | 기원전 246년, 13세 |
| 통일 완성 | 기원전 221년, 제나라 멸망 |
| 분서갱유 | 기원전 213~212년 |
| 병마용 | 기원전 246년 착공, 208년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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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누구였나 — 영정이라는 이름부터

본명은 영정(嬴政)입니다. 성씨가 영(嬴), 이름이 정(政)이었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은 이름이 아니라 직함입니다. ‘시황’은 ‘처음 황제’라는 뜻이고요. 왕이 아니라 황제라는 호칭을 중국사에서 처음 쓴 사람이 그였습니다.
통일 이전 기록을 보면 진왕(秦王) 정입니다.
열세 살 즉위에서 통일까지, 연표로 보는 25년

여섯 나라가 무너진 순서는 이렇습니다.
- 기원전 246년 — 진왕 즉위, 같은 해 병마용 착공
- 기원전 230년 — 한나라 멸망, 첫 번째
- 기원전 229년 — 조나라 공격 시작
- 기원전 228년 — 조나라 멸망
- 기원전 227년 — 형가의 암살 시도 실패
- 기원전 225년 — 위나라 멸망
- 기원전 223년 — 초나라 멸망
- 기원전 222년 — 연나라 멸망
- 기원전 221년 — 제나라가 마지막으로 무너지며 통일 완성
형가(荊軻)는 기원전 227년 함양궁에서 진왕을 찔렀다가 실패한 자객입니다.
💡 병마용은 즉위 첫해에 시작해 기원전 208년에야 끝났습니다. 38년 공사였고, 진시황이 죽은 뒤까지 이어졌습니다.
통일 뒤 그가 바꾼 것은 무엇인가?

진시황은 군현제(郡縣制)를 깔았습니다. 황제가 직접 뽑은 관료가 전국을 다스립니다. 주나라 봉건제를 걷어내고 이 제도를 깔았습니다.
봉건제에서는 지방 제후가 자기 땅을 대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군현제에서는 그 자리에 임기 있는 관료가 앉습니다. 그래야 제후가 힘을 키워 나라를 쪼개지 못합니다.
기원전 213년에 책을 불태웠고(분서), 212년에 술사들을 죽였습니다(갱유). 같은 212년에 시작된 또 하나의 공사가 아방궁(阿房宮)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고, 기원전 207년 항우가 불태웠습니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와 기록의 차이 네 가지
| 흔히 아는 것 | 기록 |
|---|---|
| 모든 책 소각 | 의약·복서·농서는 남김 |
| 선비 천여 명 | 술사 400여 명 |
| 맹강녀가 장성 무너뜨림 | 원래는 기량의 아내 |
| 수은의 강과 바다 | 사마천 기록, 목격 아님 |

분서 때 태운 건 황제가 지정하지 않은 사상서입니다. 나라를 굴리는 데 쓰는 지식은 그대로 뒀습니다.
맹강녀 이야기는 출처가 다른 데서 왔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기량이라는 대장군이 있었고, 그 아내를 두고 전설이 돌았고, 후대에 진시황 시대로 옮겨 붙었습니다.
진시황릉의 수은 바다는 사마천이 적은 내용이지만, 본인이 본 것은 아닙니다.
참고한 곳: 위키백과(진 시황제·진나라·진시황릉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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