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중국 조선족 어떻게 생겼나 — 조선족이 중국으로 건너간 출발점은 1869년입니다. 한반도 북부에 대흉년이 들어 함경도 주민들이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과 함께 생긴 민족이 아니라, 그보다 80년 앞선 이주입니다. 이름은 들어 봤는데 언제 왜 갔는지가 안 잡히는 분께 필요한 글입니다.
| 구분 | 핵심 내용 |
|---|---|
| 이주 시작 | 1869년 북부 대흉년 |
| 금지령 철폐 | 1885년 조선인 이주 허용 |
| 1945년 인구 | 만주 조선인 216만 명 |
| 잔류 | 약 116만 명 |
| 명칭 확정 | 1949~1954년 민족식별공작 |
| 자치구 설립 | 1952년 9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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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은 누구를 가리키나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갖고 사는 한민족이고, 소수민족으로 분류됩니다. 한자로 朝鲜族, 병음으로 cháoxiǎnzú라고 적습니다.
이 이름은 처음부터 쓰던 게 아닙니다. 조선인, 한민(韓民), 한교(韓僑)로 불렸고 1949년부터 1954년까지 중국 공산당이 벌인 민족식별공작(소수민족을 규정하는 작업)에서 지금의 공식 명칭이 정해졌습니다.
북한 사람과는 다른 집단입니다. 조선족은 중국 국적자이고, 1945년 해방 뒤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 주를 이룹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온 탈북민과는 출발지가 다릅니다.
1869년 흉년이 무엇을 바꿨나요?

흉년이 들자 사람들이 먼저 떠났습니다. 제도는 뒤늦게 따라왔습니다. 두만강 건너편은 청나라가 출입을 막아 둔 땅이었는데, 굶는 쪽이 먼저 움직였거든요.
| 연도 | 일어난 일 |
|---|---|
| 1869년 | 북부 대흉년, 간도 이주 |
| 1881년 | 청, 봉금령 폐지 |
| 1885년 | 이주 금지령 철폐 |
| 1910년 | 조선인 10만~22만 명 |
1881년 청이 봉금령(만주 출입 금지령)을 풀고 변경에 사람을 채우는 이민 실변 정책을 펴면서 흐름이 뒤집혔습니다. 1885년에는 조선인 이주 금지령까지 없앴습니다.
216만 명 중 116만 명은 왜 남았나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자리 잡고 살던 곳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945년 만주의 조선인은 216만 명, 이 가운데 약 100만 명이 귀국했습니다. 남은 116만 명이 절반을 넘습니다.
그때 만주의 조선인은 이미 2대, 3대째였습니다. 밭농사뿐이던 만주에 논을 들인 쪽이 조선인 농민이고, 수로를 내 만든 논은 팔고 떠나기 어려운 재산이었습니다.
이주가 끝나고도 한참 지나서야 국적을 정리했습니다. 1949~1954년 민족식별공작에서 조선족이 공식 소수민족으로 지정되면서, 남은 사람들은 중국 국적의 소수민족이 됐습니다.
1952년 연변자치구, 그리고 비어 가는 연변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세워졌습니다. 당시 인구 중 조선인이 53만 명으로 전체의 62%였고, 1955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이름이 바뀝니다.
자치주 지위가 붙으면 조선말을 가르치고 민족학교를 세우는 일이 제도 안에 남습니다. 그 지위가 없는 곳에 흩어져 살면 학교도 말도 한 세대씩 깎여 나갑니다. 연변 말이 북한 문화어에 가까운 까닭은 이주민 다수가 함경도 출신이고 국경 너머와 붙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일하러 가거나 베이징·칭다오 같은 도시로 옮기면서 연변이 비어 갑니다.
더 확인하고 싶을 때
그 땅이 누구 것이 됐는지 궁금하면 우리역사넷에서 간도 협약 항목을 먼저 열어 보세요.
참고한 곳: 위키백과, 우리역사넷, 세계한민족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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